■ 학력
- 보성중학교 3년 수학 1908.9-1911.2
- 오성학교 졸업 1911.2-1912.3
- 선린상업학교 수학 1912.4-1914.11
- 연희전문학교 수학 및 물리과(數學及物理科) 졸업 1915-19
- 미국 엘비온대학 졸업 1921-22
- 미국 미시간대학 이학석사 취득 1922-23
- 미국 미시간대학 이학박사 취득(천문학) 1923-26
이원철은 어릴 때부터 탁월한 기억력과 신속한 수치계산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동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중앙관상대장으로 재직중에는 필요한 전화번호를 모두 암기하고 있어 일상 업무 수행시에 전화번호부를 찾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원주율을 소수점아래 수십자리까지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고 한다. 정식학교에 입학전 5년간 한학(漢學)을 사숙했으며, 이후에도 틈나는 대로 한서를 탐독해서 한학에 조예가 깊었다.
연희전문 재학중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학생강사라는 신분으로 2년간 통계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연희전문의 수학교수인 선교사가 풀지 못하는 난제를 10분만에 풀어냈고, 이후로도 여러 차례 교수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풀어냈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못했는데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선교사가 모든 경비를 제공해 미국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연희전문 교수였던 벡커와 미시간 대학의 교수이자 연희전문 교수를 지낸 루퍼스가 유학생활을 도와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큰형 이원상(李源祥)은 1929년 당시 미국 영사관 통역관을 지냈다고 한다.
■ 경력
- 연희전문학교 교수(수물과) 1926-38
- 군정청(軍政廳) 학무국 기상과장(氣象科長) 겸 관상대 대장 1945-48
- 문교부 산하 국립중앙관상대 초대대장 48. 8-61. 5
- 인하공과대학 초대학장 1954-65
- 한국기상학회 초대회장 1947-?
-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1960-63
- 연세대학교 재단이사장 1961-63
학위를 마치고 모교인 연희전문에서 12년간 교수를 지냈다. 박사학위 논문에서 연구한 독수리자리 에타별은 이원철이 처음으로 발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원철성(원철스타)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실 그가 독수리자리 에타별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아니었고, 에타별이 맥동변광성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었다. 비록 전문적인 천문학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던 일반인들이 발견으로 생각한 것이었지만, 이원철은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미국유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30세에 연희전문의 교수가 된 ‘천재’ 이원철은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민중들에게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존재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미국에서 진행했던 천문학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그는 연구 대신 교육을 통해 자신의 학문적 열정과 재능을 쏟아 부었다. 연희전문의 천문학 강의는 당시 고등교육 수준에서 거의 유일한 천문학 강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의 이학박사인 이원철의 천문학 강의는 연희전문의 자랑거리였다. 또한 원철성의 발견자로서 유명해진 이원철은 서울 YMCA에서 정기적인 대중강연 등을 통해 과학을 널리 알리는데 앞장섰다.
해방이 되자 이원철은 관상대(현 기상청의 전신)를 복구하여 운영하는 일에 매진했다. 관상대 초대 대장으로 15년을 넘게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기상 및 천문과 관련된 인력을 키우고 제반 제도를 확립하여 기상업무의 정착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상학과 천문학 양 분야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